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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택 개인전 - Good(s) For Human - 열려
 
김상태 기자 기사입력  2017/12/04 [13:45]

“마치 영원한 봄에 사는 듯 옷을 입게 만드는, 결코 그의 옷에서 가을을 보지 않는” - 니콜라스 바본.

 

오늘날 ‘패션’이라는 지위를 부여 받은 옷은 특히 여성에게는 부인할 수 없는 유혹임에 틀림없다. 옷에 관한 사회적 기호나 권력, 만연한 나르시시즘적 환영은 ‘실재’의 우리를 잊어버리게 한다. 갤러리JJ에서는 사진작가 오상택의 전시를 마련하였다.

 

 

오상택은 옷과 옷장을 소재로 현대성을 은유하며 익숙함 속에서 허구와 현실의 틈새를 파고든다. 그의 ‘Closet’ 연작은 아름답고 독특한 예술세계를 이미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아 많은 미술관들에 소장되고 컬렉터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왔다. 작가의 예전 작품이 삶의 모순과 간극을 행위와 장면의 역동적 대비로 표현했다면, 뒤를 이은 ‘Closet’은 그러한 피사체 내면의 드러남은 물론 현실과 낭만적 허구가 뒤섞이면서 익숙한 가운데 어쩐지 낯선 시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간결한 흑백 화면은 현실의 옷을 피사체로 하는 가상의 옷장 장면이다. 사진 매체와 현실 사물의 객관성과 허구를 적절히 조화시키고 은유한 화면은 어쩐지 생경하면서도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며, 나아가 동시대적 감성을 자극하여 관객에게 이미지 너머의 다양한 사유를 유발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옷-한편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값비싼 옷-이라는 사물은 그러나 그의 손에서 사물로서의 본성과 사회가 부여한 관습으로서의 존재적 아우라가 교차하며 그 사이에서 어쩌면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다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약 3년 만에 갖는 개인전으로서, 새롭게 촬영한 의상들로 표현한 신작 ‘Closet’으로 구성된다. 작품은 화이트 옷장과 검은 옷 등의 색상 변화 및 새로운 표현의 시도 속에서 또 다른 내러티브가 창출되면서 한층 완숙되고 다채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제목인 ‘Good(s) For Human’이란 인간에게 좋은 것, 혹은 상품이라는 이중의 의미이며, 여기에 익명의 여배우를 상정함으로써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동시에 이것이 허구의 산물임을 은폐한다.

 

이번 ‘어느 여배우의 옷장’ 전시는 ‘Good(s) For Human’의 첫 번째 시리즈로, 앞으로 전개될 다음 시리즈의 이야기들도 기대된다. 한편 전시공간 또한 작품에서의 옷장이라는 무대가 주는 연극성과 환타지적 요소들이 연장된 공간으로서, 관객들은 더욱 낯선 장소로의 몰입이 유도되고 어쩌면 개인의 은밀한 사적 영역일 수 있는 여배우의 옷장 엿보기에 적극 동참하게 될 것이다.

 

 

탈나르시시즘

커다란 화면 속 새하얀 드레스가 일렁거린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어떤 사물의 사진을 찍는 것은 그것을 의미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기 위한 행위’라고 했다. 작가는 현실의 옷을 찍는다. 사진 속 사물은 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그때 그 시간에 ‘거기 있음’을 사실로 가진다. 이러한 사진이 주는 지표적 명료함은 화면 속 사물에 현실감을 주지만, 동시에 일련의 작업 과정을 통하여 비실재감과 모호함이 발생하면서 옷장의 비밀스러운 대화가 시작된다. 옷이 걸려진 가상의 공간은 옷장이면서 한편 옷장이 아닌 일종의 아토피아(Atopie, ‘장소없음’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된다. 화면은 부풀려진 옷 사이즈 및 부피감, 흔들리는 리듬의 연약함, 심연같이 드리운 모호한 배경, 캔버스를 이용한 회화적 질감 표현 등으로 관심이 향하게 되면서 결코 단조롭지 않게 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선의 방향을 대상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돌려놓는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옷장이라는 하나의 장면은 옷 사진-부정성이 없는 최적화된 표면의 패션 매체로서의 옷 사진-들이 갖는 매끄럽고 빈틈없는 가시성이 아닌, 관조적으로 머물 수 있는 거리가 발생하면서 비로소 상상적인 것의 내러티브가 펼쳐지는 무대가 된다. 작가의 작품이 유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러한 ‘거리 두기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가 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라진 옷의 화면은 주체의 현존과 부재, 배경에서의 드러냄과 숨김이 교차하며 관객은 일종의 경외감, 혹은 은폐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바르트는 ‘드러냄과 숨김의 동시적 연출’ 즉 은폐가 에로틱하다고 보았으며, 한편 독일어에서는 ‘가상 Schein’과 ‘아름답다 schön’의 어원이 같다. 이렇듯 아름다움은 가상이고 은유다. 그리고 목적 없이 자유롭다.

 

가상의 영역에서 옷은 부유하듯 한없이 가볍고 자유로이 떠돌며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실재와 가상의 틈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서정성 혹은 아름다운 언캐니함이 생성된다. 덧없음에 대한 충만함, 환멸에 대한 아름다움… 오상택의 사진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네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꽉 잡으라. 그 옷을 놓지 마라… 그것이 네가 잃어버린 여신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신적인 것이다.” (『파우스트』 괴테)

 

 

시작_나르시시즘

작가의 옷은 시대성과 현대인의 욕망에 관한 은유의 사물로서 시작되었다. 도시적 감성이 충만한 자신을 투영하고, 옷장은 마음속의 내재되어 있는 욕망이 발견되는 장소이자 스스로의 결핍을 채우는 공간으로서다. 오늘날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들은 철저하게 ‘기호’로서 작용하며, 이러한 물신화된 기호나 시대적인 욕망의 지표들 속에서 패션 매체들이 만든 상징적 이미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사유에 의하면, ‘주체의 고유한 욕망이란 존재할 수 없고 욕망이란 언제나 타자의 것’으로서, 자아란 이미지에 대한 상상적 동일시를 통해 만들어지는 허구적 산물이다. 이러한 자기 소외와 타자의 시선은 우리 속에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환상적 이미지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나르시시즘적 속성이 지배하는 곳이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세계다. 그 세계에서 옷은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이렇게 작가가 주목하는 옷의 계급화 혹은 권력적 속성은 도시인으로서 유사한 공동의 경험으로 소통된다. 특히 작가가 찍는 남성의 권위적인 수트와 여성의 연약한 드레스라는 분별은 젠더의 관념적 역할과 사회적 페르소나마저 상기시키며 한편 여성의 옷, 하얀색 옷의 순결 등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페티시에도 닿아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이러한 현실 감각과 의미 작용을 모호하게 흐리는 또 다른 분위기가 존재한다. 가상공간에 놓인 거대한 사이즈의 고급 옷. 옷은 존재하지만 입을 수는 없어 보이고, 가질 수 없는 듯 하지만 한편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의인화된 소재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한편 감성적 현전과 의미 작용 사이의 간극은 친숙한 것의 또 다른 낯섦이 된다. 이렇게 작가는 현실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포착하려고 한다. 오상택의 옷은 더 이상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관조의 대상이 된다. 탈나르시시즘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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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04 [13:45]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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