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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미장센, 레섹 스쿠르스키(Leszek Skurski) 개인전
갤러리 JJ - 독일에서 활동 중인 폴란드 작가 레섹 스쿠르스키의 'Stranger than Paradise'
 
임해숙 기자 기사입력  2015/12/07 [08:35]

찰나의 순간과 정지, 나타남과 사라짐, 침묵, 사이 등으로부터 낯선 세계가 문득 열린다. 갤러리JJ는 거대한 순백색의 정제된 화면으로서 삶의 여느 장면들이 무심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는 레섹 스쿠르스키의 개인전을 마련하였다.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작가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쿠르스키는 일상 속 찰나의 순간을 담은 드넓게 하얀 캔버스를 제시한다. 작품은 대부분 끝없이 하얗게 얼룩진 평면이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심 혹은 한켠에 어디선가 나타난 듯 작고 검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마치 캔버스 깊은 곳에서 출몰한 듯, 희뿌연 물감 혹은 빛의 겹겹의 레이어를 뚫고 나타난 듯한 분명치 않은 형상들은 방대하고 무한히 열린 공간에서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며 정교한 내러티브를 펼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즉각적으로 포착된 순간에 대한 ‘회상’을 담아내는 동시에 인간의 현존과 본질적 의미에 관한 생각을 전달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는 두 번째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으로서, 더욱 간결해진 화면으로 존재에 관한 애틋함과 따뜻한 애정이 묻어나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스쿠르스키의 작품 제목 중 하나를 가져왔고, 짐 자무시 감독의 동명의 영화를 떠올린다. 작가가 불러오는 흑백의 모노톤이 지배하는 추상적 세계와 그 속에 깃듯 낯선 감각, 절제된 아름다움은 특별한 감동을 줄 것이다. 또한 이 전시가 일상의 삶과 우리를 둘러싼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작은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화이트의 미장센

일상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사람들이 늘 주목하는 요소다. 여기서 스쿠르스키의 작품이 눈길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과 관점이다. 그는 백색 여백의 추상적 장면을 구사한다. 그의 작품은 스냅샷처럼 순간의 정지 장면이지만 한편 의도된 미장센의 화면이기도 하다. 화면에서 인물의 실루엣들은 한곳에 집중되고 배경은 지워지고 생략되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약간의 암시를 통해 그곳이 해변 혹은 거리, 공원, 운동장 등임을 눈치 채기도 한다. 알 수 있는 것들의 대부분이 제거된 순백색의 보이드 속, 그래서 작은 인물들이 벌이는 사소한 행동들은 더욱 잘 보이고 고요함마저 감지된다.

 

시점 또한 매우 독특하다. 마치 고정된 카메라에 의해 촬영되는 자무시 감독의 영화 장면처럼 이미 잡아놓은 프레임 구도 속으로 인물들이 들어오는 듯하며, 또한 장면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상정하여 익명성을 유지하고 디테일은 사라져도 좋은 즈음이다. 작가는 아주 날카롭게 특별한 순간들을 묘사하지만 거기에는 더 이상의 디테일이나 컬러풀한 색의 표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색이 없을 때 장면에 훨씬 잘 집중할 수 있고 그래서 순백색은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좋은 도구다. 백색은 항상 같은 것이 아니라 무한히 다양하며 각 작품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백색을 띈다.”

 

순백은 오히려 많은 여지를 준다. 작가는 ‘화이트’ 색상이 지닌 고요함과 침묵, 정신성, 공허함 등 그 특성을 놀랍도록 잘 활용하여 응축된 형식으로 반영하는 한편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한 많은 공간을 남겨두었다. 배경은 드러내기 위한 지워짐이다. 사라질 듯 연약한 형상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인해 힘을 받고 그래서 스쿠르스키의 그림자 같은 장면들이 주는 잔잔한 여운은 오래 간다. 여백은 결코 비어있지 않다. 이야기는 열려있고 마지막은 관객의 몫이다.

 

 

Empty Freedom

지워진 하얀 배경은 우리를 낯선 세계로의 경험으로 인도한다. 심지어 밖으로 연장되다시피 한 무한의 공간, 열려있는 보이드를 배경으로 미미하게 보이는 형상들. 이끌어주는 것은 없어 보이고 따라서 이들은 무한히 자유로움을 얻는다. 그것은 차라리 실존주의 사상가인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사유한 ‘텅 빈 자유Empty Freedom’를 획득한 존재에 다름 아니다. 형상들은 고립되거나 서로 미약하게나마 연결되어있다. 이들은 화면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또한 전부이기도 하며, 작은 외형으로 전체를 장악한다. 존재들은 따로 혹은 같이 움직이며 현실적으로 자신들만의 공간을 찾아 의미를 창조하며 삶의 무대로 들어간다.

 

이렇듯 공간 부재는 무중력의 우주공간과 같고 우리는 타인과의 중력을 느끼며 서로 관계하며 실존을 극복한다. 스쿠르스키의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다. 광범위한 순백색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 침묵이 공명하는 가운데 존재들이 빚어내는 몸의 언어는 놀랄만한 느낌을 생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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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2/07 [08:35]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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